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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 서평과 관람평

각종 미디어에서 판을 치는 SF 장르의 위세와는 다르게, 책이라는 이 아날로그 문화의 정점에 속한 매체쪽에서는 시대가 흘러갈수록 그 위상이 더욱 줄어드는 모습이 하드SF 마니아인 본인을 슬프게 한다. 그나마 최근 10년 사이에 발표된 류츠신1의 삼체 시리즈 같은 훌륭한 몇몇 작품들과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클래식들이 있어서 지독한 이 암흑의 시대를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앤디 위어 Andy Weir 는 그중에서도 최근에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가다. 그의 첫 메이저 데뷔작인 마션2 은 내 전자책 라이프 초창기를 뜨겁게 달궈준 책 중 하나이기도 하며, 대충 지금까지 7~8번은 완독할 만큼 주기적으로 다시 찾는 책이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아르테미스3가 발간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었는지…그리고 이어지는 실망감에 차마 리뷰글을 올리지도 못했었다. 글 자체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만, 마션의 헐리웃 입성에 자극받은 앤디 위어가 마치 다음 극장판이나 드라마를 노리고 쓴 방송용 대본 같은 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틴에이저 소설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올 만큼 결이 다른 작품이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소설판

그렇게 위어의 차기작을 검색하며 기다린 시간이 꽤 길어졌고,4 한동안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접하며 서서히 뇌리에서 잊힐 즈음, 갑자기 신작 발매 소식이 들려왔다. 심지어 소설 출간과 함께 영화 제작 확정이라는 기사까지 접하고 보니 그 기대감이 어떠했을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으로 인해 내 최애 캐릭터가 된 라이언 고슬링 주연이라니?? 뭘까 이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기분은? 프로젝트 헤일메리5는 당연히 발매 당일 전자책으로 구매했고 구매한 당일 독파했다. 그리고 하루이틀쯤 지나고 두 번째 완독을 했다. 그만큼 만족스러웠고, 앤디 위어가 돌아왔다!! 라는 게 내 첫 감상이었다.

이런 저런 기기들을 많이 사용해봤지만 종이책이 아니면 역시 e-ink 패널로 읽는게 가장 독서 경험이 좋다.

📌 시놉시스

밀실에서 깨어난 그레이스는 자신의 정체도 잊어버릴 만큼 심한 기억 상실증을 겪으며 문득 문득 떠오르는 과학 지식으로 상황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지구, 아니 태양계는 정체불명의 아스트로파지라는 우주 미생물에 의해 느리지만 확실한 멸망의 길에 들어선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범 지구적 권력을 이양받은 스트라트 라는 인물에 의해 모종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앤디 위어는 전작인 마션에서 굉장히 독특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단번에 확립했다. 그것은 바로 위트와 사랑, 그리고 과학이다. 물론 사랑은 농담이 아닌 진심이다.(??) 일단 캐릭터 설정부터 확실하다. 마션에서는 식물학자이자 공학자라는, 일반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을듯한 특성을 미션 스페셜리스트 라는 상황을 이용해 납득이 가능하도록 세팅했다. 덕분에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감자도 수확하고 기계도 고치며 온갖 역경을 헤쳐나갈수 있었다. 따지고보면 일종의 만화적 허용에 가까운 설정이다. 화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가 하필이면 식량재배에 일가견이 있으면서 온갖 기계도 고칠수 있는 공돌이라고??!! 심지어 둘 다 박사 학위가 있어!!!

그리고 이런 양상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우주선에서 벌어지는 온갖 상황에 대처하면서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하는 주인공 그레이스는 한때 촉망받던 외계생물학자였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가설을 주장하다가 학계에서 쫒겨나 중학교 과학 교사로 일하며 다방면의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후에 합류하는 로키라는 인물을 통해 마크 와트니가 가지고 있던 공학적 기술 역시 가지게 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전작의 마크 와트니 라는 캐릭터를 그레이스와 로키로 양분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영화에서 묘사된 우주선과는 사뭇 다른 디자인이다. 처음에 본문을 읽기 전에는 도대체 이걸로 뭘한다는 말인가…잠시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앤디 위어의 강점은 하드SF 장르를 누구나 흥미롭게 볼수 있도록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글솜씨에 있다. 분명히 복잡한 계산과 장엄한 과학적 가설이 난무하는 소설이지만 문단 하나 이해하려고해도 온갖 검색을 다해봐야하는 몇몇 작품들과는 다르게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상황과 전개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는 작가다. 그렉 이건의 쿼런틴 (Quarantine, 1992)같은 작품은 읽다보면 내가 어딘가의 논문을 읽고 있는 것인지 SF 소설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때가 있을만큼 중간중간 난해함이 난무하는데 비해 앤디 위어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그러한 불편함이 많이 중화된 상태로 독자들을 몰입을 돕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판타지 작품처럼 “이건 마법이니까 그런가보다 해”라는건 절대 없다. 오히려 근래 SF 작가들중에서 가장 과학적 기반이나 실험에 충실한 작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단지 어려움을 재미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할 뿐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도 그러한 위어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고 있다. 첫번째 완독을 끝내고나서 처음 느낀 감정은 “어? 이거 SF 작품들 중에서도 수위권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라는 과장된 생각이 들만큼 굉장히 신선하고 놀라운 설정들이 가득했다. 그 옛날 아서 C 클라크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놀라운 상상력이라는 충격과 비슷한 감정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를 읽고나서 마션이 앤디 위어의 한계였었나 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본인에게 “Stay!!”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앞서 사랑이 농담이라는 얘기를 했지만 사실 위어는 그의 작품내에서 인류애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갈구하게 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마션에서는 한 명의 우주비행사를 구하기 위해 전 인류가 국가를 초월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그려졌었고, 헤일메리에서는 타인이나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하는 모습들이 여러번 반복된다. 아마도 앤디 위어는 세상이 좀 더 사랑으로 가득했으면 하나 보다.

CGV 신세계백화점 센텀점

당연히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나도 관람하러 갔었다. 심지어 감독이 누구인지 각본가도 확인하지 않고 그저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이름과 헤일메리의 영화판이라는 조건만으로 반응해버렸다. 평소의 SF 영화를 대하는 나의 자세를 되짚어보면 살짝 맛이 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나는 개봉 영화를 보러 갈때 상세하게 조사를 하고 가는 편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 극장 입구
몇년만에 방문한 신세계백화점 센텀점. 최근 십년사이 영화는 거의 여기서 보는듯.
아침을 조금밖에 안먹어서 일단 푸드코트에서 흡입.
옛날같으면 엄청 먹었을텐데…다들 늙었어..
왕과사는남자가 그렇게 인기라는데… 우리는 그저 SF…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가챠 좀 해볼걸…싶더라. 푸린..
포스터 한장 챙겨온다는게 나오면서 아무 생각을 못했다.
몇년 격조한 사이에 아이맥스 관이 생겼더라. 거금 1인당 2.2만원을 투자! 그리고 우리는 만족했다 🙂
불 꺼지기 전에 얼른 한 컷. 의자 앞뒤 공간이 넓어졌지만 정작 의자 자체가 더 편안한가…라는건 살짝 의문.

영화 관람을 마치고..

책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 마션의 극장판과 비슷한 노선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헤일메리의 감독은 소설 속 사건의 연속성보다는 인물간의 드라마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책에서 묘사된 요소들이지만 영화속 내러티브는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 원작가가 적절히 잘 배치해둔 인류애를 너무 과하게 부풀린 면이 없잖아 보여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편했다.

원작의 도입부가 굉장히 흥미진진한데 러닝타임을 위해 단호하게 줄여버린 부분은 원작을 즐긴 이들에게 호불호가 될 수 있을듯 하다. 활자로만 접했을때는 본인의 빈곤한 상상력으로 인해 쉽게 연상하기 어려운 몇몇 장비나 상황에 대한 묘사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여전했다.

로키의 묘사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많아졌는데, CG가 아닌 질감이 느껴지는 형태로 재현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워졌지만 현 시대에 이정도가 최선이었나 하는 점이 살짝 미묘한 부분이다. 원작 속에서 묘사된 부분들도 상당수 생략된것도 아쉬웠고.

원작 소설을 독파한 사람들에게는 20%정도 아쉬움 남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여러모로 재미 있는 작품, 그러나 일부 장면들에서 의아함이 남을 수 있는 작품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고 뭔가 아쉬움이 남는 이들에게 원작 소설은 훌륭한 해우소 역할을 할테니 부러울 따름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고 이벤트나 씬의 묘사가 훌륭했기 때문에 원작 소설의 팬으로써는 그럭저럭 재미 있었다고 할만 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모자람이 있는 작품이지만 상대가 그 ‘스콧’ 감독이어서야 어쩔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아이맥스관에 대해서는 비싼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만큼 만족도가 높았다. 누가 그랬는가. 아이맥스로는 스케일이 큰 액션 영화나 어울린다고. 그렇지 않다. 아이맥스는 드라마라 할지라도 옮은 선택이 된다. 상상을 불허하는 거대한 화면, 그리고 그 화면을 수놓는 뛰어난 화질의 레이저 프로젝터와 스케일감에서 압도하는 사운드의 연합 공격은 그 어떤 장르라도 몰입도와 재미를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할것이다. EVA 장면에서 보여준 흡입력 있던 우주 장면은 살짝 패닉이 올 만큼 임팩트가 있었다. 본인은 앞으로도 가능하면 아이맥스 관을 이용해야겠다 다짐할 정도였다.

맺음말

몇 년만의 극장 나들이는 비록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벌인 졸음과의 사투로 인해 조금 빛 바랜감이 있지만, 그 보이지 않는 위협 phantom menace 조차도 아이맥스라는 강력한 힘 Force 앞에서는 의미가 없을만큼 훌륭한 경험을 선사했다. 원작 자체가 그랬던만큼 시종일관 스릴 넘치고 거대한 규모의 악의 무리를 토벌하는 액션감은 없을지언정 앤디 위어라는 훌륭한 이야기꾼이 자아낸 내러티브를 두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즐길 수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이야기겠지만.

소설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번이 3번째, 결이 달랐던 아르테미스를 제외하면 고작 2번째 책을 집필한 앤디 위어다. 기간으로 치면 1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이지만 아직 앤디 위어라는 작가의 최고점이 나오려면 멀었다고 생각한다. 각종 인터뷰에서 차기작을 이미 구상중이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의 3번째…아니 4번째 작품은 어떤 즐거움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는 말을 끝으로 이번 글을 맺음한다.

  1. 중국의 SF 소설 작가. 63년생. 삼체, 유랑지구, 구상섬전 등의 집필. ↩︎
  2. The Martian, 2011. ↩︎
  3. Artemis, 2017. ↩︎
  4. 이때 잠시 요상한 제목의 작품을 집필중이라는 루머가 있었다. ↩︎
  5. Project Hail Mary,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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